음주가

A Drinking Song

음주가

                                                                               예이츠


Wine comes in at the mouth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

That's all we know for truth Before we grow old and die.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I lift the glass to my mouth, I look at you , and I sigh.

나는 술잔을 들어 입에 대고 그대를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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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아직 인생을 모르나 보다.

by outsider | 2011/02/22 23:37 | | 트랙백 | 덧글(2)

<악마를 보았다> 감상

지금에 와서는 좀 뒤늦은 감상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올려본다.
사실 스토리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 계획이 있으신 분은 안 보시는 쪽이 좋을 듯.


일단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나는 말은 하나였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래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보게될 것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중간에 천호진이 '괴물과 싸우겠다고 자기도 괴물이 되겠다면 어쩌자는 건지...'
이런 내용의 대사를 치는데,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분명 김지운 감독도 저 말을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최민식은 악마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이병헌 역시 그와 싸우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던 악마성을 조금씩 끌어내며,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들을 벌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별로 충격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최민식이 저렇게 다시 덤비지 못하게 손이라도 자르든가,
아니면 힘줄이라도 좀 자르든가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마성을 느꼈다든가 전혀 그런 느낌도 아니었고.
그냥 재미있게 봤다. 그것말고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잔인하거나 불편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한가지 생각해볼만한 것은 '사적 복수'에 대한 것이다.
일단, 영화에서 이병헌이 한 것처럼 사적 복수를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병헌이 최민식에게 복수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무술실력이 있고,
(이병헌은 최민식이 칼들고 설칠 때도 거의 맨손으로 싸운다)
후배와 장인의 도움-캡슐과 경찰 내부 정보-이 있고,
마지막으로 비정상적일 정도의 집요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 어설프게 따라하려면 그냥 최민식 같은 싸이코패스의 칼에 썰리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다 해결하고 복수에 성공한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사적 복수라는 것 자체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수를 개인에게 맡기면 이처럼 무능력한 사람은 복수를 할 수가 없기에 법이 있는 것이지만,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같은 싸이코패스 앞에서 법이란 게 참 무력하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법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죽이는 것뿐이지만,
저런 이들에게 죽음이란 별다른 형벌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적 복수를 하려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적 복수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른다.

모두가 사적 복수를 하려고 들면 홉스의 말처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며,
복수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서 이루어질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음...간단히 말하면 이병헌 같은 사람한테 걸리면 망하는 거고,
그 이하면 잡혀서 당하더라도 어떻게 좀 약하게 빠져나갈 수도 있고...그런 식으로.
그런 점에선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더라도 법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장면, 최민식의 가족들이 최민식을 죽이게 만들고 빠져나오는 이병헌의 모습.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
그는 정말 자신이 원했던 복수를 성취한 것일까? 사실, 모르겠다.
다만 그에게는 아직도 인간성이 남아있는 것 같다.
정말 이병헌이 악마가 되었다는 걸 보여주려면,
좀 유치하긴 해도 거기서 택시를 잡아탄 뒤 택시운전기사를 썰어버린다든가(...)
그런 장면이 나와야 될 듯 한데
그는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그 뒤의 남은 문제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ps. 김인서 정말 김옥빈 닮았더라. 사람들이 닮았다 닮았다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리고 처제 역 맡은 여배우가 예뻤다.(...)

by outsider | 2010/08/27 18:05 | 트랙백 | 덧글(3)

<4천원 인생> 서평

 이 책은 <한겨레 21>의 사회부 기자 네 명이 직접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해서 한 달 동안 노동하고,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것은 통계나 정책과 같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이들의 취재는 ‘노동 OTL’이란 이름으로 기사화됐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일단은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고, 결과물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천원 인생>에는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의 신산함과 그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생이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권일이 추천사에 쓴 표현처럼 감히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 할만하다.


 임지선 기자는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에서 ‘식당 아줌마’로 일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감자탕집의 직원들이 3개월 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3개월간 하루도 못 쉬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그래서 그녀가 사장에게 하루의 휴식을 허락받았을 때, 같이 일하는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였다.

 삼동친목회에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들은 한 달에 이틀을 쉬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따지면 물론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더 열악했겠지만, 휴일만 놓고 보면 인천의 감자탕집 노동자들이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들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정말로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임지선 기자는 그 외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요구되는 남자 손님들의 추근거림과 사장의 횡포 등등.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일이 끝나고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노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08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기존 취업 여성의 경우, 평일에 184분 가사노동을 한다. 퇴근 후에도 하루 3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다.

 임지선 기자는 취재 후기에서 “나를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냐”는 독자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가서 아줌마를 막 시킬 수 있었는데 기사를 읽고 나니 물조차 갖다달라고 하기 미안하다”고 하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읽으면서 약간은 불편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진실은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기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문제를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환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웬만하면 앞으로는 식당아줌마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나의 그런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안수찬 기자는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에서 ‘노동’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일했던 코너가 달랐기 때문에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읽으며 홈플러스에서 일했던 경험이 자꾸 떠올랐다. 안수찬 기자는 ‘직원들은 매대에 기대는 것도 쭈그려 앉는 것도 금지된다’고 했는데,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담당이나 선임 안 볼 때 다 했던 거라 ‘내가 좀 편하게 일했구나’란 생각이 약간 들었다.

 그리고 역시 안수찬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마트 노동자는 대부분 마트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 고용된다. 이들에게는 몇 년을 일하든 승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월급이 오르는 일도 없다. 내가 홈플러스에서 일했을 때를 생각해봐도, 확실히 그랬다. 나는 어쩌다 보니 마트에 직접 고용이 됐지만, 내가 일했던 완구‧문구 코너에서 담당과 선임을 제외하면 직영은 두 명이었다. 그 외에는 음반‧서적, 애완동물 사료, 수족관, 문구 외부업체, 완구 외부업체 등 대다수가 외부업체 직원이었다. 이들은 연장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이 나오지 않고, 식사도 자기 돈으로 사먹어야 했고, 몇 년을 일해도 담당이나 선임이 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등 분명히 차별이 있었다. 나는 어차피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거라 별로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4천원 인생>을 읽으면서 ‘거의 6개월이나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도 안 해봤다니 참 무디구나’하는 자괴감을 약간 느꼈다. 타인의 고통과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잠깐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흔들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4천원 인생>, 133p 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생각했던 건 ‘기존의 정치권이 너무도 잘못해왔다’는 것이었다.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없기에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것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제까지 잘못해왔다고 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거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종휘 기자는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 달을 보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첫째, 단속이다.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는 단속이 두려워 15년 동안 한 번도 남양주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피우롱 역시 단속이 두려워 마음껏 쇼핑하러 가지도 못한다. 전종휘 기자의 옆방에 살던 몽골 친구는 미등록 신분의 부인을 항상 방 안에 가둔 채, 방문을 바깥에서 잠그고 출근했다. 단속이 나와도 쉽게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에, ‘불법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등록 노동자이고 이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만은 않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법대로’만을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 이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차별이다.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특히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비슷한 경력의 한국인은 그들보다 최소한 20만~100만 원 이상 본봉이 많다. 야근수당 단가도 본봉에 비례하므로 총액으로 따지면 차이는 훨씬 벌어진다. 같은 일을 14년째 하고 있는 마리아 누나의 본봉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신참인 나와 똑같은 130만 원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장일을 시작한 지 1년 된 민성이도 본봉이 140만 원이다.

-<4천원 인생>, 164p 중에서

 

 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노래방 이야기였다. 공장 회식 때, 고깃집에서 가서 맛있게 고기를 먹고 고깃집 한쪽에 마련된 노래방 시설에서 화기애애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외국인 동료들은 본국 노래가 없으니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 후에 노래방까지 간 것이었다. 자기들만 즐기는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함을 느낀 전종휘 기자는 그 자리에서 팝송을 불렀고,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가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이 또한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부터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배려가 공존의 시작일 것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배려와 공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임인택 기자는 경기 안산의 가전제품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회고한다. ‘인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라인’의 속도. 그 단순한 무한 반복 작업 속에서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일의 보람이나 자존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1936년에 나온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절로 생각났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이윤 논리 앞에서 인간성이 무시당하는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고통은 ‘옆의 동료를 미워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있다. 호흡이 맞지 않아서, 작업을 방해받아서, 나보다 쉬운 일을 하면서 같은 시급을 받아서 동료를 미워하게 된다. 월터 윙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히 ‘사탄의 체제’라 할만하다.

 물론 노동자들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사회적 멸시’와 ‘부당’을 내면화할지언정 모르진 않는다. 안산‧시흥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64.9%가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다”, 39.8%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다”, 39.1%가 “복지후생이 빈약해 불만이다”, 15.4%가 “관리‧감독자가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는다”며 노동조건상 애로사항을 토로했다.(‘위 실태조사’)

-<4천원 인생>, 247p 중에서

 

 그러나 그들은 임인택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섬 같은 이들’이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고, 서로의 고통도 기쁨도 나누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하여 그는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노해의 <오늘은 다르게>에 그런 말이 있다. 자신의 희망 찾기는 사실은 희망 버리기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짜 희망과 타협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복잡한 시스템의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만일지 모른다. 안수찬 기자도 그런 말을 한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매우 공감한다. ‘노동OTL'이, 그리고 <4천원 인생>이 목표했던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냉정한 분석 위에서 대안의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어리석거나 무모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더 많은 담론이 필요하다.

 

 네 기자의 ‘노동OTL’ 기사 뒤에는 네 명의 기자와 최고라‧유재영 독자편집위원과의 좌담이 실려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내용. 최고라 독자편집위원이 “늘 주변에 있는데 우리 눈에서 자꾸 사라지는 사람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다시 불러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자, 임인택 기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차피 또 금방 잊혀질 거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을 불러내야 한다. 이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끊임없는 호명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by outsider | 2010/08/22 13:33 | 잡문 | 트랙백 | 덧글(4)

<크로스>

이 책은 진중권과 정재승이 스타벅스, 스티브 잡스, 구글 등
21개의 키워드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목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시각차를 드러내고
나아가 그 둘을 통합하는 관점을 가지게 만드는 것인 듯 한데,
일단 시도 자체는 좋지만 두 가지 관점을 그냥 나열하는 데서 그치는 느낌이다.
차라리 대담 식으로 진행했다면 차이도 더 명확히 드러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일단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 둘의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는 몇 가지 지점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선 대체로 정재승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에 대해서 두 가지만 말해본다.

진중권은 헬로키티의 성공요인 중 하나로
헬로키티의 개인사를 꼽는다.
예를 들어 출신지는 런던 근교, 신장은 사과 다섯 개라는 식의 설정들 말이다.
그에 비해 정재승은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런 개인사를 알지 못하며,
헬로키티의 성공을 그런 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너무 '미국적인 시각'이라 말한다.
나도 그렇지만, 소비자들도 헬로키티의 개인사에 대해 잘 모를 것 같다.
그렇다면 정재승의 말에 더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그리고 개그콘서트에 대한 관점.
정재승은 '반전의 웃음'이
<개그콘서트>에서 중요한 웃음 전략 중 하나라고 하고, 
진중권은 과거의 기승전결식 코미디와는 달리 반전이 아니라
순간적인 웃음에 의존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떨지는 몰라도,
즉흥성이 강화된 가운데서도 나름대로의 기승전결과 반전은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원래 몇 가지 더 생각한 게 있었는데, 생각이 안 난다.-_;
여하튼, 사실 별로 깊이있다든가 하는 느낌은 별로 안 들었지만
나름대로 참신하고 의미있는 시도였다는 느낌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장 보드리야르의 책을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y outsider | 2010/08/07 19:40 | 독서 | 트랙백 | 덧글(0)

대화.

방학 중, 오랜만에 집에 내려와서 아버지와 정치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역대 가장 답답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갑자기 보도연맹 생각이 나면서
우파들이 계속 이따위로 할 것 같으면
좌파들이 우파들 한 20만 명 죽이고 집권해도
그렇게 못할 짓은 아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더 형평성이 맞을지도.
계속 이따위로밖에 못 할 거 같으면
한국의 우파들은 학살당해도 할말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물론 진짜 그러자는 건 아니지만.-_;

이래서 집에 오고 싶지 않았어.OTL

문득 생각이 든 건데,
우파 혹은 보수는 진보 혹은 좌파에 대해
'너희는 현실을 몰라'라는 식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은 원래 더러운 거야. 인간은 추악하고 이기적인 존재지.
뭐...그런 거.

근데 거기에 대해서는 정말 한 마디하고 싶다.
세상이 그렇게 깨끗하지 않다는 건 다 알고 있다고.
그런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거라고. 잘난 척 좀 하지 말라고.

정말 오랜만의 포스팅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다.-_-;

by outsider | 2010/08/05 22:27 | 일기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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